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칠리아 왕국 (문단 편집) === [[카를루 1세]]의 압제와 [[시칠리아의 만종]] === 앙주의 샤를은 만프레디를 처단한 뒤 팔레르모에서 '''[[카를루 1세]]'''로서 시칠리아 왕위에 올랐다. [[콘라딘]]은 만프레디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야말로 시칠리아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슈바벤]] 공국을 담보로 삼아 군자금을 마련한 뒤 시칠리아 왕국을 침공했다. 그러나 1268년 탈리아코초 전투에서 카를루 1세에게 참패한 뒤 생포된 후 10월 29일 반역죄로 재판을 받은 뒤 나폴리에서 참수되었다. 이리하여 시칠리아의 유일한 군주가 된 카를루 1세는 호엔슈타우펜 가문 구성원들과 추종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한편, 시칠리아 백성들에게 이전보다 30배에 달하는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도시들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또한 시칠리아 정부에 자신과 함께 남하한 프랑스 관료들로 채웠고, 프랑스 군인들을 시칠리아 각지에 배치해 시칠리아 귀족 및 백성들을 엄중히 감시하게 했다. 카를루 1세는 시칠리아를 공략한 여세를 몰아 지중해 각지에 세력을 뻗쳐 '앙주 제국'을 세우려는 야망을 품고 즉위 직후부터 대외 원정을 잇따라 감행했다. 1277년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을 칭했으며, 1278년에 [[라틴 제국]]의 최후의 황제 [[보두앵 2세(라틴 제국)|보두앵 2세]]로부터 아카이아 공국의 주권을 양도받았다. 그는 라틴 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발칸 반도로 쳐들어가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고, 1281년 교황 [[마르티노 4세]]로부터 "[[이단/기독교|이단]]인 [[정교회]]를 신봉하는 [[미하일 8세]]를 타도하고 가톨릭 국가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재건하라"는 교령을 접수받고 [[십자군]]을 선포해, 동로마 제국을 향한 대대적인 공세를 준비했다. 이렇듯 적극적인 대외 확장 정책을 벌이면서, 이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가혹한 수탈을 일삼는 카를루 1세에 대한 시칠리아 민중의 분노는 갈수록 불거졌고, 프랑스인들이 요직을 장악하는 바람에 정치에 참여할 길이 막혀버린 귀족들 역시 만감을 품었다. 일전에 만프레디의 딸 [[쿠스탄차 2세|쿠스탄차]]와 결혼했던 [[아라곤 왕국]]의 국왕 [[페드로 3세]]는 시칠리아에서 앙주 왕조에 대한 반감이 극렬해지는 상황을 예의주시했고, 아내의 설득을 받아들여 시칠리아에서 망명 온 호엔슈타우펜 가문 구성원 및 추종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며 장차 카를루 1세를 시칠리아에서 타도하고 왕위를 가로챌 기회를 노렸다. 여기에 카를루 1세가 [[베네치아 공화국]]과 손잡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도모하려 드는 것에 위협을 느낀 동로마 황제 [[미하일 8세]]도 아라곤 왕국에 군자금을 지원해 함대를 조직하게 하고, 시칠리아에 공작원들을 잠입시켜 귀족과 민중을 선동했다. 이렇듯 아라곤 왕국과 동로마 제국의 부추김으로 분위기가 고조되던 1282년 3월 말, 팔레르모에서 일어난 봉기를 시작으로 시칠리아 전역에서 반 앙주 봉기가 발발해 시칠리아에 살던 프랑스 병사와 민간인들이 모조리 학살당했다.([[시칠리아의 만종]]) 시칠리아 도시들은 롬바르디아 동맹을 모델로 삼아 시칠리아 도시 동맹을 결성했다. 그들은 오직 교황만이 자신들을 이끌 수 있다며 교황청에 사절을 보내 자신들을 이끌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교황 마르티노 4세는 충실한 동맹자인 카를루 1세와 갈라설 이유는 없다고 여기고 단호히 거부했다. 이에 그들은 카를루 1세의 보복을 두려워한 끝에 아라곤 국왕 페드로 3세에게 구원을 요청하기로 헀다. 한편, 페드로 3세는 사라센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튀니스로 함대를 몰고 간 후 시칠리아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렸다.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자, 그는 시칠리아로 진군해 1282년 8월 30일 트라파니에 상륙했다. 이후 팔레르모에 입성해 9월 4일 시칠리아 왕으로 선포되었다. 이리하여 아라곤 왕국을 이끌던 바르셀로나 왕조가 시칠리아의 지배자로 등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